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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평화칼럼] 강론이 어렵다고요?

참 빛 사랑 2016. 3. 9. 20:54


이창훈 알폰소




미사 때에 신자도 어려워하고 사제도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강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평신도는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목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라고 밝힌다. 이어서 이렇게 덧붙인다. “사정이 이렇다는 것이 유감입니다”(135항).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급이 아니어도, 강론은 신자들에게나 사제들에게나 유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신자들은 사제의 강론이 못마땅해서 유감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강론 내용에 대해 항의하거나 미사 도중에 퇴장하는 신자들도 있다. 반면에 사제들은 강론을 준비하기가 부담스럽다. 강론을 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제도 있다.

신자들이 강론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강론 내용이 마뜩잖아서다. 강론 내용이 마뜩잖다는 것은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 어쨌거나 강론 내용이 마뜩잖을 때는 어떤 때일까. 알맹이가 없을 때다. 알맹이가 없는 강론은 신자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신자들의 항의와 퇴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강론이 있다. 십중팔구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내용으로 삼을 때다. 한쪽을 편들 때, 또는 그렇게 느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강론 시간이 지나치게 길 때다. 내용이 좋다 하더라도 강론이 길어지면 대부분 신자는 힘들어한다. 알맹이도 없는데 지루하기까지 한 강론은 신자들에게 더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중에 퇴장하는 신자들은 없지만, 내용이 없고 지루한 강론이 계속되면 신자들은 그 미사에 참례하지 않게 된다.

이론적으로 강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제는 없다. ‘강론은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을 그날 전례의 성경 말씀이나 통상문이나 고유 전례문으로 해설하는 전례 한 부분으로, 강론할 때는 거행하는 신비나 듣는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전례헌장」 52항, 「미사경본 총지침」 65항 참조).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신자들의 삶을 살찌우는 강론을 준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필자는 25년이 넘는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제를 만났지만 강론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사제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제가 강론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특히 전례 안에서 이뤄지는 강론은 교회 운영보다 훨씬 앞서는, 사목자의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책무다.

좋은 강론이 되도록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신자들에게는 좋은 강론을 하는 사제를 쫓아다니기보다 ‘우리 신부님이 강론을 잘 준비하시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사제는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간다. 강론 준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강론에 대한 피드백을 해 드리자. 사제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사제들에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에 나오는 강론 부분을 다시 한 번 정독하고 성찰하실 것을 부탁드린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을 독자들과 나눈다. “강론은 성사적 친교에 앞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 나누는 대화에서 최고의 순간으로서, 모든 교리 교육을 뛰어넘습니다. 강론은 주님께서 이미 당신 백성과 시작하신 대화를 이어 갑니다. 강론자는 자기 공동체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137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