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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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보

기도란 무엇인가?

참 빛 사랑 2014. 11. 21. 13:18

 

 

기도의 단계 ②- 구송 기도

▲ 구송 기도는 데레사 성녀가 초대하는 기도의 여정 가운데 첫 번째 단계이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도이다. 대표적인 구송 기도로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식사 전·후 기도, 묵주기도, 성무일도 등이 있다.




관상 기도로 이어주는 구송 기도

성녀 데레사가 초대하는 기도의 여정 가운데 첫 번째 단계이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도로 ‘구송 기도(口誦 祈禱)’를 들 수 있습니다. 구송 기도는 말 그대로 입으로 읊으며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일정한 기도문을 만들어 기회 될 때마다 그 기도문을 읊으며 드리도록 하는 기도는 모두 이 기도에 속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드리는 대표적인 구송 기도로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식사 전·후 기도, 묵주기도, 성무일도 등이 있으며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미사 또한 구송 기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잘 드린 구송 기도야말로 수준 높은 기도가 될뿐더러 영혼을 높은 관상의 경지로 인도해주는 최상의 기도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녀는 각 사람이 지닌 기질, 교육 정도, 영혼의 성숙 정도에 따라 각자에게 더 잘 맞는 기도 방법을 활용해서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을 갖도록 권했습니다. 특히 성녀는 무학문맹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쉬운 구송 기도를 통해 높은 관상의 경지까지 도달한 여러 경우를 들어 이 기도를 권했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가르치는 구송 기도란?

무엇보다 성녀는 구송 기도를 함에 있어서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의식하도록 주문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녀는 기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늘 염두에 둬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대화 상대자인 하느님의 현존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권했습니다(「완덕의 길」 26,1). 성녀는 이 점이야말로 기도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서 기도의 효과는 얼마나 하느님을 기도 안에 현존시키고 거기에 머무는가에 달렸다고 보았습니다.

그다음으로 성녀는 주님 곁에 머물되 그분과 함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성녀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주님을 바라보는 자세’를 핵심으로 꼽았습니다(「완덕의 길」 26,3). 성녀는 이런 근본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가운데 구송 기도를 드리되 묵상을 병행하도록 권했습니다. 이는 곧 구송 기도와 묵상 기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부분으로 결국 성녀는 구송 기도의 묵상 기도화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상 기도와 구송 기도의 구별이 입을 다물고 안 다물고 있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입으로 외면서 그 말씀을 다 알아듣고 하느님하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그것이 곧 묵상 기도이면서 구송 기도인 것입니다”(「완덕의 길」 22,1). 그래서 성녀는 「완덕의 길」에서 구송 기도를 묵상 기도와 함께 묶어서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엄격하게 구송 기도만을 따로 떼어내서 설명하기보다는 묵상 기도의 틀 안에서 구송 기도를 함께 소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완덕의 길」 22,3).



기도는 양(量)의 문제가 아닌 질(質)의 문제

묵주기도는 대표적인 구송 기도 가운데 하나로 평소 신심 깊은 신자들 사이에서는 은연중에 누가 묵주기도를 더 많이 하나 하는 경쟁이 붙곤 합니다. 하루는 어느 시골 본당의 신심 깊은 A할머니께서 하루 종일 묵주알을 굴려 기도를 해서 100단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할머니셨습니다. 친구 B할머니에게 자신의 기도 능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A할머님은 이내 자신이 하루 만에 100단을 했다며 으스댔답니다. 그런데 웬걸, B할머님은 1,000단을 했다고 맞받아쳤지 뭡니까? 그 비결을 물었더니 묵주알을 굴리며 ‘성모송’을 한 번 읊은 다음에 이어서 성모송을 반복하지 않고 “아까 멩케로”를 9번 연발 날려서 시간을 엄청 단축하면서도 묵주기도를 10배나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얘기를 듣고 있던 C할머님, 가관입니다. C할머님은 가소롭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며 자신은 5000단을 했다고 자랑했답니다. 그 비결을 물으니, 한꺼번에 5개의 묵주를 잡고 B할머님의 “아까 멩케로” 주문을 연발했다고 합니다. 설마, 그럴 리야! 라고들 하시겠지만, 보통의 신자들이 묵주기도에 대해 갖는 의식은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관총을 쏘듯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모송을 읊으며 묵주알을 굴려서 1단이라도 더 많이 해야 공덕을 더 쌓고 그걸로 은총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게 묵주기도를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어떻게 묵주기도를 잘 할 것인가?

묵주기도를 빨리, 많이 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각각의 신비를 묵상하며 그 신비에 대한 묵상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게 묵주기도의 핵심입니다. 50단 했다, 100단 했다고 하는 산술적인 기도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1단을 하더라도 얼마나 깊이 있게 주님 안에 머무르며 각각의 신비가 초대하는 구원 역사의 사건을 묵상하고 주님을 만났는가가 관건입니다. 스님들이 동안거, 하안거라 해서 도를 깨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러 몇 달간 선방(禪房)에 들어가면서 책을 궤짝으로 싸들고 가지는 않습니다. 스승으로부터 ‘화두’가 되는 단어 한 글자만 받아서 몇 달을 그것과 목숨을 걸고 씨름해서 깨달음에 이릅니다. 그렇듯이, 주님을 만나 사랑하는데 한 숨도 쉬지 않고 지껄일 필요는 없습니다.

구송 기도! 짧은 기도문이라도 온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드리면 충분히 깊은 관상 기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실어서 정성을 다해 천천히 성모송을 드리며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안에 푹 빠져 묵주알을 굴려보십시오. 어느새 기도의 고수가 되어 있는 여러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거둠 기도: 전형적인 ‘데레사 스타일’의 기도 방식

성녀 데레사가 중년 이후에 신비적인 기도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실천했던 대표적인 기도 방법이 있었습니다. ‘거둠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머리를 많이 쓰는 추리 묵상 기도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보다 직접적으로 주님과 교감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성녀는 추리 묵상 기도보다는 마음을 사용하는 이 거둠 기도를 훨씬 선호했습니다. 성녀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기질을 살펴보건대, 오늘날의 대표적인 심리 성격 유형 분류법 중의 하나인 MBTI로 보면 아마도 성녀 데레사는 ENFP(외향형, 직관형, 감정형, 개방형)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주기능을 담당하는 N(직관형)과 F(감정형)를 보면, 평소 성녀가 편하게 생각하는 기도 방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성녀는 기질적으로 머리보다는 마음을 많이 사용하고 직관적이며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자연스레 그런 기질을 바탕으로 예수님과 대화하고 관계를 맺어갔을 것입니다. 실제로 성녀는 이 기도를 알게 된 이후 주로 이 기도를 수련하며 신비 기도의 문턱까지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거둠 기도란?

거둠 기도는 말 그대로 자신을 거둬들이는 기도를 말합니다. 즉, 영혼의 주요 능력들(지성, 기억, 의지)의 활동과 감각들(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상상 등)의 활동을 잠잠하게 하는 가운데 모든 관심을 영혼 안으로 집중하고 거기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면서 그 하느님과 더불어 교감을 나누는 기도가 곧 거둠 기도입니다. 성녀 데레사에게 거둠 기도는 ‘능동적 거둠 기도’와 ‘수동적 거둠 기도’라는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납니다. 능동적 거둠 기도는 일종의 그리스도교화한 요가이자 심리적, 육체적 기도 수련입니다. 반면, 능동적 거둠 기도에 뒤따르는 수동적 거둠 기도는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갖고 그분이 원하실 때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인간의 노력이나 준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녀가 말하는 신비적인 기도에 속한 기도 형태 중 하나입니다.



거둠 기도의 교본인 오수나의 「제삼 기도 초보」


사실 거둠 기도는 성녀가 발명한 새로운 기도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15세기 중반부터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개혁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 실천해 왔고 사목 일선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활용해왔던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회원이던 오수나의 프란치스코 신부가 쓴 「제삼 기도 초보」라는 책은 이 분야의 교과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성녀는 서원한 지 얼마 안 돼 병가를 보내며 우연한 기회에 「제삼 기도 초보」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오랫동안 이 책에 나오는 거둠 기도 방법을 실천하는 가운데 이를 자신에게 맞는 기도 방법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기도는 추리 묵상보다 훨씬 더 직관적(直觀的)이고 정감적(情感的)인 방법으로 머리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또 외부를 관찰하거나 상상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단순합니다. 무엇보다 거둠 기도는 서로 좋아하는 두 인격체, 즉 하느님과 영혼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거둠 기도는 존재의 중심, 즉 인간 존재의 심연(深淵)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하는 ‘사랑의 대화’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모든 것을 거둬들여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이 기도에 열심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극 권장했습니다.



신비적 관상으로 인도하는 최상의 수덕적 기도


성녀는 지성으로 추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먼저 신비적인 관상 기도에 도달하곤 한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의 핵심인 사랑의 관계 맺음에 더 적합한 정감적 능력(情感的 能力)을 사용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성과 더불어 추리 묵상을 통해 신앙의 진리를 깨우치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우회적인 길이 아닌 직접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지름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 거둠 기도를 추리 묵상 기도보다 높은 단계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이 기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평소 신심 관련 서적들을 읽도록 권했으며, 특히 기도 중에 침잠(沈潛)하기 위해 그리스도 또는 신앙의 진리와 관련된 약간의 글을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거둠 기도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의 잡다한 능력들을 사용해서 주님과 교감하는 대신 자기 내면 중심에 현존해 계신 주님께로 내려가 그분과 직접 사랑을 나누는 효과적인 기도 방법입니다. 성녀는 우리가 이 능동적 거둠 기도를 실천하도록 쉼 없이 권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녀는 바로 이 거둠 기도가 수덕적인 기도와 신비적인 기도 사이의 경계라는 점을 잘 알았고 또 여기서 많은 영적 보화들이 흘러나온다는 것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거둠 기도는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초자연적인 관상을 허락하시고자 할 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인간 편에서 자기 영혼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하기 위한 적극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둠 기도는 ‘데레사적인 스타일’이 물씬 묻어나는 인간이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수덕적 기도(修德的 祈禱) 방법입니다. 여러분도 성녀 데레사와 함께 거둠 기도에 미쳐보지 않으시렵니까?

 

윤주현 신부
(대구가르멜 수도원장,대전가톨릭대 교수)

 

 

 


 

 

 <1> 기도란 무엇인가

▲ 조규만 주교


신자 대다수는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할까 고민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방법뿐 아니라 직접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고 또 자주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때마침 서울대교구는 내년을 ‘기도의 해’로 지낸다. 또 기도의 해를 잘 보내기 위해 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는 기도를 주제로 13일부터 5주간 교리학교를 개설했다. 평화신문은 교리학교에서 진행하는 조규만(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의 강의 내용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


기도에 대해 많은 정의가 있다.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기도를 ‘마음의 약동이며 하느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나 슬플 때 시련을 겪을 때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이라고 정의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기도를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2560항)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저는 기도를 ‘하느님을 사랑하고 더 잘 알기 위해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듯,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럼에도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기도다.

하느님과의 대화와 만남은 우리 대화와 만남과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하느님과의 만남인 기도는 일방적이다. 벽에다 하는 하소연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떠나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 하느님을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기도 시간은 하느님의 시간으로, 결코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했다. 우리 영혼은 기도하지 않으면 숨을 못 쉬어 죽게 된다고 한 것이다. 하느님과의 이러한 만남 없이 구원은 불가능하다. 구원이 하느님을 만나는 일인데,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만남 없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의 만남이 가능할까.



친교의 만남인 기도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목적은 보통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문제 해결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 아닌, ‘더 사랑하고, 더 잘 알기 위한’ 만남이다. TV ‘미수다’에 출연했던 방송인 크리스티나씨가 한국인 남편과 연애할 때는 주말마다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이처럼 연애할 때는 없던 시간도 내고 돈도 아끼지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 하느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청원 기도’다. 이는 당연하다. 종교가 있는 목적이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에 대해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모든 종교는 현세 구복적이다. 하지만 그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크고 초월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잘 알기 위한 ‘친교의 만남’이다. 바로 감사와 찬미의 기도다. 꼭 기도라고 해서 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인이 함께 있을 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이 얼마나 많이 기도하셨는지 배어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이 ‘주님의 기도’다.

교회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공동체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권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경기에서 한기주 선수가 있었다. 잘하는 투수인데, 그땐 던지기만 하면 안타를 맞았다. 하지만 야구단 선수 전원이 금메달을 땄다. 한 선수를 보면서 하느님이 왜 부족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는지 알 수 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6가지 이유

기도했음에도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는 첫째,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아서이다. 하느님도 마음 없이 하는 기도는 알아듣지 못하신다. 하느님과의 대화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둘째는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아서다. 셋째는 겸손하지 않아서이며, 넷째는 그 기도를 들어주면 그것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롭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도 우리가 냉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째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안 들어주시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기도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 관상수도회는 주 업무가 기도다. 활동도 하지만, 먹고 사는 것만 허용된다. 트라피스트 수도회와 가르멜 수도회 등이 대표적이다. 생산성 제로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는 관상수도회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구약에서 모세는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웠다. 하지만 모세가 기도하지 않으면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패했다.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선교의 수호성인’이다. 성녀는 기도한 것밖에 없다. 수녀원에서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선종한 성녀를 교회는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하느님은 참 아이러니하시고, 유머러스하시다.

어떻게 보면 기도는 낭비가 맞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는 분명히 힘이 있기 때문이다. 교황 방한을 준비하면서 기도를 참 많이 했다. 당시 일기예보에서 8월 15~17일 비가 내릴 것으로 돼 있었지만, 바람이 솔솔 불고, 햇빛도 적당했다. 나만 기도한 줄 알았는데, 우리 신자 할머니들도 많이 기도하셨다.

많은 분이 기도할 때 분심이 든다고 한다. 머릿속에 가장 당면한 문제가 떠오르는 것이다. 어쩌면 분심은 내가 하느님하고 대화해야 할 주제인지도 모른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